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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불매야 불매야 - 울산 달내철장 그리고 쇠부리
⊙ 하나. 쇠 이야기

인류의 발전사에 있어 가장 큰 두 가지 동기라면 첫째 불의 발견이요, 둘째 철의 발견일 것이다.
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다시 철기시대로 발달해 감에 따라 각 시대의 사회적 생산력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였는데, 특히 철은 무른 청동에 비해 생산도구나 무기로서 사람들의 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바로 쇠는 인류가 발전하는 큰 고갯마루에서 문명의 지렛대 역할을 하는 한편 힘의 상징으로, 쇠를 장악한 집단이 국가를 장악했고, 이웃나라를 정복하였으며, 부와 영광을 함께 누렸다.
철이 발견되므로 국가의 힘이 되는 제대로 된 무기를 만들 수 있었고, 쟁기의 보습이나 괭이, 낫을 만들어 농사를 확대할 수 있었으며, 도끼와 끌이나 생활용 칼을 만들어 안정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는 집을 튼튼히 지을 수 있게 되었으니 비로소 인류는 문명에 대한 준비를 할 수가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의 지혜에 의해 쇠를 처음으로 녹여낸 것은 서지건 205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Ur탑 옆에 쇠를 녹인 가마자리와 쇠 찌꺼기가 발견되었고, 동양에서는 서기전 1100냔걍 중국 은나라의 유적에서 발겨뇌었지만, 널리 사용하게 된 것은 서기전 770년 무렵 춘추전국시대부터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쇠를 처음 사용한 흔적은 서기전 4 ~ 5백 년 전이지만, 본격적인 철기시대는 서기전 2백년 경부터 시작되는데, 이철을 직접 생산하는 최초의 철광산은 울산에 있었다.
여기에 대한 기록은 중국의 사서인 삼국지 위서 오환선비동이전(三國志 魏書 烏丸鮮卑東夷傳)에 나온다. 이 기록에는 '변진에서 쇠가 나오는데, 한(韓), 예(濊), 왜(倭)와 교역을 하였고, 이의 매매와 교환에는 화폐 즉 돈처럼 사용한다.'는 글귀가 있고, 이보다 100년 뒤에 나온 '후한서'에도 이와 같은 글이 있다.
대체로 기원전 1 ~ 2세기에 한반도의 남쪽에 형성되었던 정치집안인 삼한 가운데 낙동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변한과 진한에서 쇠가 나왔고, 이 쇠는 삼한사회는 물론 동예와 왜국 그리고 낙랑과 대방을 거쳐 중국에까지 공급되었다는 사실은 고대사회에서 엄청난 일이었다.
적어도 무역을 할 만큼 많은 양의 쇠라면 그 산지의 규모 역시 만만치 않았을 것인데, 여기에 대해 후대의 기록이지만, 조선 세종실록지리지에 남한에서 생산되어 나라에 바쳐진 철의 양을 적은 내용이 있다. 이미 이때는 전국적으로 철광산이 있었는데, 경상도와 전라도를 통틀어 62,273근의 철이 생산되었으나 울산의 철장 한 곳에서 12,500근 그러니까 전체의 1/5이상이 바쳐졌다는 것은 그 규모를 짐작케 하지만 보다 구체적인 증거가 계속 밝여지고 있고, 왜와 교역했다는 증거로 일본의 고대 철기를 분석한 결과 구성비가 울산 철장의 쇠와 같으므로 이 기록이 사실임을 알려주고 있다.